‘[OO구청] OO구 30번 확진자 동선 홈페이지 공개.’
‘[OO구청] 20번째 확진자 관내 이동 동선 등 구홈페이지, 블로그 공개.’
안전 안내 문자로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봤을 것이다. 코로나 19가 터진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코로나 확진자 동선이다.
확진자가 다녀간 경로는 정확히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감염이 쉽고 빠르게 전파되기 때문에 방역을 담당하는 입장에서는 재빨리 주민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 주민들도 확진자 동선을 통해 나도 모르는 사이 코로나 확진자와 접촉했는지 혹은 더 주의해야 하는지 등을 인지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확진자 동선은 지자체 누리집뿐만 아니라 개인 SNS에도 많이 공유되었다.
인터넷 방역단이 있는 송파구청 ©김진흥
코로나 디지털 장의사 역할을 자처하는 송파구 인터넷 방역단. ©김진흥
하지만 반대로 코로나 확진자 동선을 지우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송파구 인터넷 방역단이다. 지난 5월 21일에 출범한 그들은 관리 기한(14일)이 지난 코로나 확진자 동선이 있는 블로그, 맘카페, 트위터 등 SNS에 삭제 요청을 하는 역할을 한다. 송파구 인터넷 방역단은 확진자 동선 삭제가 꼭 필요한 작업임을 주장했다.
송파구의 주장은 6월 말 현재 전국으로 퍼지는 중이다. 행정안전부는 송파구 사업을 모범적인 사례라고 소개하면서 다른 지방자치단체들에 권장했다. 몇몇 지자체들은 송파구에 문의하면서 인터넷 방역단을 벤치마킹하며 실시하는 중이다. 이처럼 서울시 한 자치구 정책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지역과 주민 안전을 위해 필요한 확진자 동선을 이들은 왜 지우고 또 이 작업이 왜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일까. 송파구 인터넷 방역단 담당자 오정필 주무관에게 직접 물어봤다.
송파구 인터넷 방역단을 담당하는 오정필 주무관 ©김진흥
Q. 현재 송파구 인터넷 방역단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요?
A. 공무원 5명과 공공근로(코로나19 대응 공공일자리 사업) 2명으로 총 7명이 맡고 있습니다.
Q. 송파구 인터넷 방역단은 디지털 장의사처럼 인터넷에서 확진자 동선을 삭제하는 역할로 알고 있어요. 구체적으로 무엇을 삭제하는 건가요?
A. 코로나 확진자가 다녀간 곳들의 관리 기한이 약 2주일 정도예요. 그래서 14일이 초과되면 그 동선은 아무 의미가 없는 거죠. 즉, 14일이 지난 확진자의 동선이 이제는 역할이 끝났으므로 지워야 한다는 거예요. 계속 남아 있으면 다른 피해들도 발생되고요.
Q. 어떤 피해들이 발생하나요?
A. 확진자 동선이 안전을 위해 필요한 건 맞지만 2주일이 지난 동선이 남아 있으면 예기치 않은 여러 피해들이 발생해요. 특히 타인들이 확진자에게 모욕감을 줄 수 있어요. 확진자가 지나다닌 장소들로 확진자를 평가하고 질타하는 댓글들을 흔히 볼 수 있는데 확진자들이 심리적으로 많이 괴로워하지요. 더구나 몇몇 사람들이 확진자 개인정보까지 털어 인터넷에 신상을 공개하는 일도 벌어져 동선 삭제에 대한 필요성이 더욱 드러나기도 했죠. 또한 확진자가 다녀간 장소들을 시민들이 기피하면서 소상공인에게도 피해가 가요. 사람들이 불안함에 그 장소를 기피하면서 매출이 줄어들어 지역 소상공인들이 힘들어 해요.
공공근로 청년이 인터넷에 있는 코로나 확진자 동선 정보를 찾고 있다. ©김진흥
Q.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코로나 확진자 동선이 다른 면에서 피해를 줄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거군요. 그렇다면 동선 삭제는 어떻게 진행되나요?
A. 먼저 저희 방역단이 블로그, 카페 등 인터넷 여러 곳들을 일일이 검색하면서 찾아요. 그러면 URL 주소들이 담긴 삭제해야 할 정보들을 한국인터넷진흥원에 보내요. 그 후 진흥원에서 네이버와 다음 같은 검색 포털 사이트로 알리고 포털에서 글쓴이에게 삭제 요청을 하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Q. 그럼 방역단이 직접 삭제를 하는 게 아니라 삭제를 요청하는 작업인 거네요?
A. 맞아요. 저희는 삭제할 권한이 없어서 삭제할 수 있도록 일일이 검색해 찾은 정보들을 정부부처인 한국인터넷진흥원에 넘기는 거죠.
동선 삭제 요청한 URL 주소들 ©김진흥
Q. 하루에 몇 건 정도 삭제 요청하나요?
A. 하루 최대 100건까지 요청해요. 처음에는 무조건 많이 할수록 좋은 줄 알고 300건 넘게 한 적도 있어요. 그러나 저희가 많이 요청했다고 해서 그 양 모두가 빨리 삭제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삭제되기까지 여러 과정들이 있고 저희도 매일 많은 양을 할 수 없으니 진흥원과 협의한 결과로 일일 최대 100건까지 하는 걸로 했어요. 현재는 요청한 수의 70%가 삭제 처리된 상황입니다.
Q. 많은 양의 동선들이 삭제되고 있어서 다행이네요. 그런데 이런 중요한 일을 나라가 아닌 지자체에서 처음 시작했다는 게 신기해요. 송파구 인터넷 방역단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A. 동선 삭제 아이디어는 지난 4월 23일에 있었던 전문가 간담회에서 나왔어요. 의사회, 약사회, 심리전문가 등 여러 전문가들과 의견들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코로나 확진자 동선 삭제에 대한 언급이 있었죠. 이 의견을 바탕으로 처음에는 구청에서 ‘동선 삭제 캠페인’에 대한 지시사항이 저희 팀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여러 지자체들이 송파구에 벤치마킹을 문의하고 있다. ©김진흥
Q. 그런데?
A. 저희 팀이 회의를 하면서 검토를 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캠페인은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크겠더라고요. 널리 알리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의견들도 많았고요. 동선 삭제 아이디어를 확실히 하려면 우리 팀에서 일일이 찾아서 삭제하자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가급적 일을 빨리 추진하려고 했어요. 하루하루 지날수록 코로나 확진자는 늘어났고 그만큼 동선을 공유하는 정보량도 많아지는 거니까요. 그래서 간담회 이후 한 달도 되지 않은 상황에 인터넷 방역단이 출범됐습니다.
Q. 구청에서 떨어진 지시사항을 팀 회의를 통해 더 나은 아이디어로 정책 구현을 하는 게 인상적이네요. 원래 송파구청은 회의 문화가 잘 이뤄지는 편인가요?
A. 송파구청 내 모든 팀이 다 그런지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저희 홍보과는 수평적인 조직 문화가 잘 형성되어 있어요. 보통 공무원 조직 문화는 딱딱하고 경직되어 있다는 평이 있는데 저희는 기자들과 많이 상대하다 보니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 서로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구청장님의 특별(?) 지시 사항도 한몫했고요.
Q. 구청장님의 지시 사항이라니요?
A. 구청장님이 오고 나서 지시하신 게 공무원들의 여러 생각들을 팀장, 과장 선에서 자르지 말라는 거였어요. 업무 외적인 아이디어라도 좋으니 중간에서 자르지 말라는 거였죠. 그래서 더 많은 대화가 오가고 회의에서도 자유롭게 의견들이 나오는 것 같아요.
Q. 송파구의 수평적인 조직 문화가 방역단이 탄생한 이유 중 하나로 볼 수 있겠군요. 처음에 정책을 계획하고 시작했을 때는 여러 난관이 많았을 것 같아요. 어떠한 자료도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A. 맞아요. 막연하더라고요. 어떤 것부터 시작해야 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그러던 중 5월 2일에 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의 동선 삭제에 관한 지침이 나왔고 이틀 후에는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보도 자료를 냈더라고요. 그래서 방통위에 연락했고 네이버, 다음 등 대형 포털사이트에도 연락을 취했어요. 포털 몇몇 분들은 처음에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호의적이지 않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한국인터넷진흥원과 연락이 닿았어요. 그때부터 정책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기존 업무와 함께 인터넷 방역단 업무를 병행하는 오정필 주무관 ©김진흥
Q. 인터넷 방역단 사업에 한국인터넷진흥원이 큰 힘이 되었나 보군요?
A. 네, 그분을 정말 극찬하고 싶어요. 한국인터넷진흥원 장웅태 주임이요. 지자체에서 일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들 중 하나가 정부부처에서 도와주지 않을 때예요. 아무래도 정부부처가 실질적으로 권한을 가지고 있어요. 삭제 권한도 지자체에 없죠. 만약 진흥원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사업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장웅태 주임이 이 사업을 듣고 나서 더 적극적으로 돕겠다면서 힘써 주셨어요. 참 감사해요.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Q. 동선 정보들이 블로그, 카페 등과 같은 곳들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언론사도 기사를 통해 코로나 확진자 동선들을 알리고 있어요. 그러면 기사들도 삭제가 필요한데 가능한가요?
A. 그 점에 고민이 많아요. 확진자 입장에서는 동선 정보가 블로그든 카페든 기사든 다 똑같이 보이는 반면, 기자들은 기사가 곧 자존심인데 그걸 삭제한다는 게 쉽지 않죠. 진흥원도 권한 밖의 일이라 삭제 요청하기 어렵고요. 한국기자협회에 문의했는데 협회에서는 질본에서 요청하면 검토해보겠다는 반응을 주었어요. 그래서 질본과 기자협회에 공문을 보내 이러한 사정을 알리는 중입니다.
원래 이 방은 기자실이었지만 지금은 인터넷 방역단 업무와 병행되고 있다 ©김진흥
Q. 동선 삭제가 왜 필요한지 기자들에게 알리는 것도 필요하겠네요.
A. 확진자 동선 삭제가 왜 중요한지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송파구를 비롯한 소수 지자체가 벌이고 있지만 더 많은 지자체들이 방역단 사업을 실시하면 많은 시민들이 공감을 하고 인지할 것으로 믿어요. 이러한 여론이 형성되면서 개인 인권을 위해 국가 차원에서 대승적으로 부탁하는 거라면 언론도 도와주지 않을까요?(웃음)
Q. 그래도 송파구에서 시작한 사업이 전국으로 퍼져 나가는 것 보면 좀 뿌듯할 것 같아요.
A. 그런 것보다 일단 막연했던 사업이 하나하나 실천되고 삭제되는 걸 보면 보람 있어요. 전에 코로나 확진자로부터 동선 삭제에 관한 전화를 받았는데 그것 때문에 많이 위축되고 불안해하셨어요. 제가 입장 바꿔 생각해도 그럴 것 같아요. 지금은 동선 정보가 삭제되는 걸 확인하는 게 더 뿌듯해요. 캠페인보다 더 효과성이 뛰어난 것도 좋고요.
Q. 보람도 있는 만큼 책임감도 클 것 같아요.
A. 당연히 책임감 크죠. 실은 본 업무와 함께 방역단 일까지 맡다보니 더 힘들긴 해요. 출장이 잦은 업무를 맡으면서 타 지자체에서 문의가 오면 설명하고 자료들도 보내야 하고. 하지만 송파구에서 시작한 사업인 만큼 공무원으로서 책임감 더 가지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섭니다.
Q. 송파구 인터넷 방역단이 출범된 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방역단 활동하는 지자체 수가 점점 늘어나고, 더 많은 시민들이 방역단 활동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인터넷 방역단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A. 코로나 확진자 동선 삭제는 저희들이 찾아서 삭제 요청하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더 중요한 건 글쓴이들이 스스로 삭제해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방역단의 최종 목표예요. 그렇게 되려면 시민들이 코로나 확진자 동선 삭제가 왜 중요한지 알고 공감하는 게 중요해요. 공감대가 잘 형성될 수 있도록 저희들이 더 열심히 홍보하고 활동하겠습니다.
동선 정보에 대해 글쓴이 스스로 삭제하는 문화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선도적인 역할을 하는 송파구 인터넷 방역단. 아무런 정보 없이 시작한 사업이 점점 정착되면서 코로나 대응 우수사례로 뽑혀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다. 최근 송파구는 짧은 애니메이션 영상을 제작하는 등 여러 방면으로 홍보하는 데 열을 올리며 확진자 동선 삭제 문화를 정착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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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9, 2020 at 09:1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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