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지낸 추억은 희미했다. 엄마 품에 처음 안겨 본 것도 네 살 때였다. 이전까진 할머니를 어머니로 알고 컸을 정도다. 1942년1월9일 대구 중구 인교동(현 성내3동) 집창촌 근처에서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8남매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난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유소년기다. 그는 출생 직후, 부친인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고향인 경남 의령으로 보내지면서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모친이 부친 사업(옛 삼성상회) 뒷바라지를 위해 주로 대구에 머물러야 했기 때문이다. 부친은 28세에 현재 삼성그룹의 모태인 삼성상회를 운영하면서 중국과 만주에서 청과물과 건어물 등을 팔았다. 당시 생활은 웬만큼 먹고 살만한 형편이었지만 어쩌다 생긴 흰 고무신을 한 켠에 숨겨 놓고 지냈을 만큼, 가풍에서 비롯된 근검 절약은 익숙한 그의 습관으로 굳어졌다.
그가 서울에 올라온 건 부친 사업장이 서울로 옮겨 온 1947년, 여섯 살 때였다. 가족들과 처음으로 한 지붕 아래 모여살 수 있게 됐다. 서울 혜화초에 입학했지만 6.25 전쟁 피난으로 다섯 번이나 전학을 해야 했다. 하지만 가족과의 재회도 잠시였다. 초교 5학년이 되던 해 “일본을 배워야 한다”는 부친의 뜻에 따라 현해탄을 건너가면서 또 다시 가족과 헤어졌다. 어릴 때부터 겪어야만 했던 이런 험난한 여정은 그의 성격에도 파고 들었다. “태어나면서부터 떨어져 사는 게 버릇이 되어 내성적인 성격이 됐어요. 저희 남매들이 부모님과 함께 다 모인 게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온 가족이 모두 모여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었으니까요.” 이 회장은 훗날 유년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이런 그의 유년시절은 그의 취미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외로웠던 그에게 일본 객지 삶을 달래준 건 영화였다. 일본 초등학교 유학시절부터 본 영화만 1,300편 이상이나 됐다고 한다. 그가 스스로 “기업가 집안에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영화 감독을 꿈꿨을 것”이라고 공공연히 밝혔을 만큼, 영화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훗날 세계 영화 업계의 거장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을 직접 만나 제작 투자 상담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을 정도였다. 이후 삼성물산의 영화 및 방송사업 등을 통합한 삼성영상사업단 출범에도 영화에 대한 그의 열정이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이 회장은 운동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일본 유학 시절, 프로레슬러였던 역도산 선수를 동경했던 그는 한국에 돌아와 입학한 서울 사대부고 재학 당시엔 레슬링부에서 직접 선수로 활약했다. 2학년 말 연습 도중 눈썹 부근의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접을 때까지 웰터급 선수로 전국대회에 입상할 만큼 재능도 나타냈다.
특히 자동차나 전자제품에 대한 호기심이 남달랐다. 일본 와세다대 경제학과를 거쳐 옮겨 간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MBA) 재학 시절엔 자동차의 내부 구조가 궁금했던 그는 분해와 조립을 수 차례씩 반복했다. 앞선 일본 유학 시절에도 새로 나온 전자제품을 사다가 뜯어 보면서 시간 보내기가 일쑤였다. 장난감을 해체하고 다시 재조립하면서 보냈던 그의 유년시절 취미는 국내 최대 전자기업 삼성전자를 일구는 데 밑거름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책 '이건희 시대, 2005년8월'에서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974년 뛰어들었던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 성공도 이 회장의 기계에 대한 이같은 신념과 체질의 산물일 것"이라고 전했다.
애견에 대한 남다른 사랑 역시, 그의 생애에선 빼놓을 순 없다. “개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고 사람과 동물 사이에서도 심적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을 만큼, 그의 애견에 대한 관심 또한 각별했다. ‘개 먹는 나라’로 인식됐던 우리나라에 개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가 심어진 데는 애견에 대한 그의 관심도 한 몫 했다는 평가까지 나올정도였다. 실제 삼성그룹은 지난 1993년부터 국내에선 처음으로 안내견 학교를 세우고 현재까지 운영하면서 많은 시각장애인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이렇게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낸 그는 1966년10월 동양방송에 입사하면서 본격적인 경영 수업에 들어갔다. 이후 1968년 중앙일보와 동양방송 이사를 시작으로 1978년 삼성물산 부회장과 1980년 중앙일보 이사 등을 차례로 거쳐 부친인 이병철 창업주가 별세한 1987년 마침내 삼성그룹 회장에 올랐다.
김기중 기자 k2j@hankookilbo.com
안하늘 기자 ahn70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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