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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June 26, 2020

“너무 많아 골라볼 정도…” 한국 ‘삐라’, 北주민들에 어떤 효과?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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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북한운동연합이 대형 풍선에 매달아 뿌린 대북 전단(자유북한운동연합 제공)2019.6.25 © News1
북한으로 날아간 대북 전단은 주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은 3만5000명이 넘지만 이들 중 북에서 한국 삐라를 본 사람은 많지 않다. 삐라가 도달하는 범위가 대개 군사분계선 이북 수십㎞ 정도에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북에서 이 지역에는 군인들이 많이 살고, 민간인은 많지 않다. 반면 탈북자의 80% 이상은 삐라가 도달하지 못하는 함경도 지역 출신이다.

다만 북한 최전방에서 근무했다면 삐라를 보지 않을 수가 없다. 또 삐라를 경험하면 매우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삐라에 영향을 받고 귀순을 선택한 사례가 적잖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금강산 인근에서 북한군으로 근무하다 2016년 분계선을 넘어 귀순한 강유 씨다. 그는 “삐라가 너무 많아 골라볼 정도였다”며 “삐라 외에 USB, MP3, 초코파이, 담배, 1달러 지폐 등도 산에 널려 있었다”고 기억했다. 이어 “북한에선 한국에서 보낸 삐라나 물자를 만지면 손이 썩는다고 선전해 처음엔 독이 빠졌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물 속의 삐라만 보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된 호기심은 점차 확대돼 한국에서 보낸 USB를 몰래 보는데 이르렀다.


삐라의 보면서 그의 생각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강 씨는 “김정은 일가를 비난하는 삐라는 믿지 않았지만 한국의 경제력을 보여주는 삐라에는 충격을 많이 받았다”고 털어놨다. 특히 그는 USB에서 고려대에 다니는 탈북 청년의 이야기를 보면서 “저기는 열심히 노력하면 대학에도 가고 성공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귀순 결심에 삐라의 영향은 50% 정도 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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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지역에서 군 복무를 하다 2012년 귀순한 정철민(가명) 씨도 비슷한 사례다. 그는 “김 씨 일가 우상화를 비난하는 삐라를 봤을 때는 처음에 화가 났고, 한국 군사력을 선전하는 삐라엔 영어가 많아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한국의 경제력을 선전하는 삐라가 가장 인상 깊었다”며 귀순 결정에 영향을 미쳤음을 시사했다. 북한 당국은 삐라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강원도 통천에서 살았던 김주영(가명) 씨는 “1992년 여름 평양에서 살 때 김일성 생가가 있는 만경대 지역에 가로 15㎝ 세로 3㎝ 정도의 종이에 ”김정일 타도하라!“고 적힌 삐라가 살포돼 당국이 발칵 뒤집힌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이 사건으로 당시 평양 사람들은 모두 필체 검사를 받았다. 한국에서 보낸 것이 아니라 내부자 소행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당국에 특히 비상이 걸린 것이었다.

그렇다면 북한은 삐라를 어떤 식으로 처리할까.

강원도 평강군 등 최전방 지역에서 198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15년 동안 ‘적위대부’ 소속 삐라 수거 전담 조직에서 활동했던 박선희(가명) 씨의 증언을 통해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한국에서 날아온 삐라와 물자를 ‘적지물자’로 볼린다. 민가 주변에 떨어진 삐라는 일반인들의 신고를 받고, 전량 수거된다. 반면 깊은 산속에 떨어진 삐라는 전담 조직이 매일 차를 타고 가서 조별로 할당된 지역을 수색해 수거해온다.

삐라 내용은 나체의 여인 사진이 제일 많았다. 젊은 병사들의 눈길을 끌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또 빌딩과 도로 등 한국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삐라가 많았다. 수거한 삐라는 하늘에서 살포된 것보다는 터지지 않은 채 뭉텅이로 떨어져 있는 경우가 더 많았다. 불에 잘 타지 않는 재질이어서 휘발유를 뿌려가며 태웠다.

삐라와 함께 볼펜, 라이터, 수첩, 여성 속옷 등도 날아왔는데, 북한 당국은 USB를 열면 폭발하고, 여성 속옷을 입으면 몸속에 벌레가 생긴다고 선전했다. 박 씨는 “한국의 볼펜을 주어 속심만 빼내 북한 볼펜 안에 넣고 썼는데 질이 너무 좋아 인상적이었고, 사탕이나 과자는 돼지를 주긴 했지만 사람은 먹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10년 넘게 삐라를 주었지만 워낙 사상교육을 많이 받아 이에 동화되진 않았다”며 “다만 2008년 인천공항에 내려 서울로 들어오는 동안 함께 온 탈북자들은 감탄했지만 나는 너무 많이 봤던 풍경이라 무덤덤했다”고 전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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